<벌거벗은 한국사> 1회 태조 이성계 1편에 이어 2편입니다 :)
[벌거벗은 한국사] 1회 태조 이성계 필기 및 총정리 - 1편
1편에는 원나라에서 태어난 이성계가 어떻게 고려인이 되었고
또 정계진출 초기에 어떤 업적을 세우는지 알아보는 시간이었다면,
2편에서는 그 유명한 위화도 회군과 함께 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이야기를 통해
왜 이성계가 고려의 역적이 되었는지를 알아봅니다✨
1회. 태조 이성계는 왜 고려의 역적이 되었나?
목차 |
요동 정벌 (1388)
: 요동 정벌은 고려가 명의 철령 이북 영토를 내놓으라는 무리한 요구에 반발하여 1388년(우왕 14년)에 요동을 공격하고자 시도한 사건
새롭게 시작된 명나라의 위협
이인임 사건이 일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혼란한 고려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남
→ 고려를 위협하는 명나라의 요구
1380년대 = 원명교체기
원나라의 대부분을 차지한 명나라
→ 고려에게 과거 원나라 영토(철령 이북)를 다시 내놓으라 요구 함
- 원나라 이후 세워진 명나라가 요동을 차지하고 고려와 국경을 맞대게 되니
예전에 원나라가 가지고 있었던 땅인 철령 이북 지역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 철령 지역은 공민왕 때 가까스로 되찾은 땅!
- 우왕과 최영 ⇒ 명나라를 꺾고 고구려의 영토까지 되찾자! & 요동 만주 지역까지도 가져오자!!
- 요동 정벌 주장
요동 정벌에 대한 의견 대립
- 친명파였던 정몽주는 명나라 침략을 반대함 → 외교적 해결 주장
- 우왕과 최영은 뜻을 굽히지 않음 → 요동 정벌을 반대하는 문신을 죽이기까지!!
- 이성계를 불러 요동 정벌에 대해 이야기함
- 그러나 이성계도 요동 정벌에 반대한다
이성계의 사불가론 (1388/04/01)
: 사, 불, 가, 론 四不可論 = 네가지 안 되는 이유
- 요동 정벌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이성계
- 사불가론의 내용
첫 번째, 작은 나라 고려가 큰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두 번째, 농번기인 여름철에 군대를 동원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세 번째, 온 나라의 군대를 동원하여 북쪽으로 가면 그 사이에 남쪽의 왜구가 공격해 올 여지가 있기 때문에 불가합니다.
네 번째, 곧 장마철이라 활에 있는 아교가 녹아서 활이 약해지고 군사들이 질병을 앓게 될 확률이 높으니 불가합니다.
- → 병사들도 훈련도 받지만 평소에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농사도 같이 하고 있음.
- 이성계는 병사들의 가정까지 걱정하며,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공격하는 것에 겁먹은 게 아니라 아끼는 병사가 많이 죽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반대
⇒ 우왕도 반박할 수 없었던 사불가론
그러나 최영의 간곡한 부탁과 설득으로 다시 요동 정벌 강행!
이성계의 마음은 답답하고 참담했지만,
왕의 명을 거부할 수 없기에
천근만근의 발걸음을 옮기며 북쪽을 향하여 진군
⇒ 압록강을 건너 위화도에 도착
→ 지리적으로 강을 넘어서면 바로 전쟁이 시작된다!!
이성계의 진군에 도사리던 난관
- 여름철에 출발 ⇒ 장마철
- 장마 때문에 강물이 불어나 건널 수가 없음 → 강이 너무 깊어짐
- 장마에 불어난 물에 빠져가지고 죽은 사람만 수백 명
- 식량은 장마비에 썩어서 보급도 안 되고
- 비에 젖은 갑옷에 행군도 어려운 상황
- → 군사들의 사기는 바닥을 치고 탈영병도 속출
- 결국 이성계는 최영에게 군의 상황을 알리고 다시 사불가론을 내세워 편지를 써보냄.
그러나,
최영은 재물을 보내며 군사들의 사기를 올리라며 요동 정벌을 끝까지 강행
- 우왕과 최영은 요동 정벌에서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한 듯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시간은 흐르고
이성계는 점점 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위화도에 계속 있자니 병력 손실이 너무 심하고
돌아가면 역적으로 몰려 가족까지 죽게 될 상황!
요동정벌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성계
위화도 회군 (1388)
: 음력 1388년 5월 22일
- 긴 고민 끝에 가족의 희생이 있더라도 내 결정 때문에 가족이 죽을지라도 요동 정벌을 가지 않겠다 다짐한 이성계.
"만일 명나라 영토를 침범함으로써 천자로부터 벌을 받는다면 즉각 나라와 백성들에게 참화가 닥칠 것이다. 내가 이치를 들어서 회군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으나 주상께서는 잘 살피지 않으시고 최영 또한 노쇠해 말을 듣지 않는다. 이제는 그대들과 함께 직접 주상을 뵙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자세히 아뢰고 측근의 악인들을 제거해 백성들을 안정시켜야만 한다.” — 이성계
《고려사》 우왕 14년 5월
→ 이성계의 회군 결정에 동의한 동료 지휘관들
결국 요동 정벌을 떠났던 군사들은
1388년 5월 22일 말머리를 돌려 회군하여 개경으로 향함
개경 도착 (1388/06/01)
: 실제 전투는 6/3부터!
개경 도착 시 상황
- 아주 쉽게 무혈 입성
- 소규모 전투로 쉽게 개경 점령!
- 돌아온 이성계에게 길을 열어준 백성들
⇒ 끝내 이성계에게 붙잡힌 우왕과 최영
서로 적이 되어 만난 고려의 두 장군, 최영과 이성계
: 고려말 난세의 영웅이라고 불렸던 최영과 이성계가 만나다
- 최영과 이성계 둘이 만났을 때, 서로 마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 왜냐면 이 두 사람은 전장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사이!
이성계가 이때 눈물을 흘리며 최영에게 했던 말
이러한 사변은 나의 본심이 아닙니다.
그러나 요동을 공격하려는 일은 대의를 거스르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가를 위태롭게 하고 백성들을 고되게 하여 그 원망이 하늘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이렇게 된 것입니다.
부디 잘 가십시오. 잘 가십시오.
— 이성계 《고려사》 우왕 14년 6월 27일
- 73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최영
- 최영은 탄식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인임의 말이 참으로 옳았구나!”
- 고려 변방의 무사로 약 20년간 고려만을 위해 싸웠던 이성계,
- 고려의 충신이었던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을 제거하고 고려의 군사권을 완벽하게 장악!!
위화도 회군에 대한 다양한 시각
1. 이성계를 죽이기 위한 최영의 함정?
첫째, 요동정벌이 이성계를 죽이기 위한 최영의 함정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실제로 이게 함정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 요동정벌을 떠났던 이성계가 실패한다면 실패의 책임으로써 제거 가능
- 설령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전투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병사들이 피해를 입어 이성계 세력 약화
- 그러나 최영의 성품으로 봤을 때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
2. 위화도 회군은 이성계의 예정된 계획?
두 번째, 위화도 회군은 이성계의 예정된 계획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위화도 회군이 요동정벌 전부터 이성계가 고려를 장악하기 위해 철저히 계획한 작전이었다는 근거가 있다
- 이성계가 회군하여 개경에 도착한 날 : 6월 1일
- 이성계의 회군 소식을 듣고 동북면에서 달려와 개경 근처에서 합류한 가별초
- 가별초가 이성계와 합류한 날 : 6월 2일
- 그런데 가별초가 동북면에서 개경으로 넘어오려면
험한 백두대간을 넘어야 하는데,
도저히 6월 2일까지 도착할 수가 없다!! - 그런데도 6월 2일에 도착함 → 이미 이전부터 위화도 회군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이야기!!
⚠️ 역사의 참 재미
: 역사의 공백들 속에서 다양한 시선들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 이성계와 함께 고려 개혁에 나선 신진사대부
- 권문세족에 빼앗겼던 토지를 백성에게 돌려주고 다시 농사짓게 함 (수탈한 토지 반환)
- 억울한 노비들 해방
⇒ 부정부패를 극복하면서 민심을 되돌림
조선 건국 (1393)
: 음력 1393년 2월 15일
- 옛 조선의 전통을 계승한다라는 의미로 국호를 ‘조선’으로 앞으로 500년을 이어갈 새로운 왕족,
조선의 탄생!!
일반적으로 역사를 이해할 때 → 영웅사관 중심
- ∴ 이성계가 메인으로 등장
- 가장 중요한 것 ⇒ 고려의 민심이 옮겨갔다는 것
- 민심을 같이 이해하면 역사의 이해도가 더 깊어지지 않을까?!
⚠️ 역사 공부 시 유의사항
그런데 여러분들 명심하셔야 합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 기억하시나요?
이성계의 서사, 이 속에는요. 과장과 왜곡 역시 곳곳에 숨겨져 있을 수 있습니다.
승자에 의해 남겨질 수 있는 과장과 왜곡
그러니까 이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
보여지는 모습에 너무 뜨겁게 반응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사실
이 이야기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최태성
고려를 지키기 위해 고려의 역적이 된 이성계.
그의 위화도 회군이 미리 계획되어 있었다면,
사불가론으로 요동정벌을 가을에 실행하자는 이성계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우왕과 최영에 대한 이성계의 결심이기도 했을 것 같아요.
이렇게 <벌거벗은 한국사>를 필기하며 정리를 하니,
어디서 들어본 듯한 사건들도 확실하게 다시 알게 되고
각 사건들의 인과관계도 명확하게 알게 된 것 같습니다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말도 있잖아요!
이 말에 동의하기도 하지만,
해외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항상 자국의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일상 대화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역사 주제가 나와 저에게 그들의 역사를 설명해주곤 했는데요.
저도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들의 역사를 듣고 있기만 했었어요ㅠㅠ
그때마다 역사에 너무 무지했다는 것이 부끄럽곤 했습니다.
이제라도 차근차근 역사를 익혀서
당당히 우리나라의 역사와 배경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싶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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