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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존 말코비치 되기> 주인공 크레이그, 존 말코비치, 영화 속 수수께끼

by amunsa 2024.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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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말코비치 되기> 포스터

 

오래전부터 이 포스터를 봤던 기억이 있다. 도대체 존 말코비치가 누구길래 존 말코비치가 된다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던 이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 이 영화를 추천하는 매체들도 적지 않게 봤었고, 존 말코비치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얼마 전 드디어 이 영화를 봤다. 신비로우면서도 독특하고 약간은 기괴한 분위기 속에서 전개되는 이 초현실적인 영화는 관객이 상상해보지 못한 스토리와 영화 속 배경으로 정체성과 욕망, 그리고 실존의 문제에 대해 탐구하게 만든다. '존 말코비치 되기'의 이야기 중심에는 인형극이라는 본인만의 예술을 펼치고자 하는 인형사 크레이그 슈워츠가 있는데, 우연한 계기로 배우 존 말코비치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문을 발견하면서 인생이 기묘하게 바뀐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의 주인공 크레이그에 대해 분석하고, 존 말코비치의 의미 그리고 영화 속 다양한 수수께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존 말코비치 되기>의 주인공 크레이그는 누구인가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의 기괴하면서도 초현실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주인공 크레이그의 역할이 크다. 그는 무서우리만큼 섬세하게 인형을 조종하고, 다소 본능적인 스토리를 인형극으로 구현해내는데, 이러한 그의 성격은 기발하고 독특한 내러티브의 핵심 역할을 한다. 크레이그는 성공한 인형사가 되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고 그의 예술적 열망은 억눌려만 간다. 크레이그의 인형극은 단지 직업으로서 영화에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크레이그 자신의 운명에 대한 통제권을 놓지 않으려는 그의 욕망이 반영된 것이다. 그가 무대 위에서 조종하는 인형들은 사회적 기대로부터의 탈출, 현실에선 하지 못했던 선택에 대한 열망을 상징한다. 그의 신비로운 모험은 한 사무실에 입사하면서 시작된다. 서류 정리하는 사람으로 취업에 도전한 크레이그는 건물의 7 1/2층에서 근무를 하게 되고, 우연한 계기로 유명 배우 말코비치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포털을 발견하면서 영화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환된다. 크레이그의 이 발견은 자신의 존재의 제약에서 벗어나는 방법인 초월에 대한 그의 갈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크레이그가 말코비치의 내면이라는 초현실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면서 영화는 관객에게 정체성의 역설을 대면하게 한다. 강렬한 정체성의 표현으로 인형사가 되어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던 크레이그가 말코비치가 하는 행동과 선택과 생각들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것이다. '존 말코비치 되기'의 이 크레이그라는 캐릭터는 욕망과 진정성 추구라는 주제와도 깊이 얽혀 있다. 그의 인형극은 단순한 공예가 아니라 예술적 인정을 받고자 하는 그의 열망을 표현한 것이다. 그의 욕망은 특히 맥신이라는 회사 동료와의 관계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또한 크레이그의 아내 로티는 영화의 욕망 탐구에 또 다른 층을 더한다. 그녀 역시 말코비치의 마음으로 향하는 포털로 들어가면서 감정적 성취와 인간관계의 진정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직면하게 된다. 영화는 크레이그와 맥신, 로티의 상호작용을 통해 순응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욕망의 복잡성을 파헤치며, 정체성 그리고 진정성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 사이의 복잡함을 그려낸다. 결국 크레이그의 인형극은 인생이라는 거대한 극장에서 정체성의 끈이 항상 우리 손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니며, 진정성을 추구하는 것은 자기 발견과 영원 사이의 지속적이고 복잡한 여정이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존 말코비치 되기> 속 말코비치의 상징과 의미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존 말코비치 역할을 실제 존 말코비치(John Malkovich) 배우가 연기를 하면서 메타픽션적인 측면과 재미를 더하고 있는데, 영화를 보다보면 이러한 질문이 떠오를 수 있다. 왜 하필 존 말코비치일까 하는 생각 말이다. (캐스팅과 관련된 이야기는 논외로 하겠다.) 영화는 실제 말코비치가 자신의 고양된 모습을 묘사하고 연기하게 함으로써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영화 속 캐릭터 말코비치는 유명인사, 정체성, 그리고 대중에 눈에 띄는 사람들이 직면한 실존적 어려움 등 더 넓은 주제를 상징하는 매체가 된다. '존 말코비치 되기'의 중심 개념에는 누구나 포털로 들어가면 15분 동안 말코비치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인데, 계속 다양한 사람들이 말코비치 속으로 들어가면서 영화는 관객에게 그러한 침입이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영화는 다른 사람의 의식을 통해 세상을 경험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점점 크레이그에게 점령되는 말코비치의 마음은 개성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은유적인 풍경이 되고, 말코비치 내면에서 크레이그의 영향력이 더욱 커짐에 따라 말코비치는 크레이그의 욕망, 꿈, 갈등을 담는 그릇이 된다. 말코비치 캐릭터는 자신의 사생활 침해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의 가장 은밀한 곳까지 접근할 수 있다는 불안한 현실과 싸운다. 이러한 실존적 딜레마는 외부 영향이 개인 자율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신랄한 질문을 제기한다. 말코비치의 경험을 통해 영화는 관객에게 다른 사람의 의식에 들어가는 것의 윤리적 측면과 침입자와 원래의 주인 모두에게 미칠 수 있는 잠재적인 영향에 대해 성찰하도록 유도하며 자아와 자율성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존 말코비치 되기>의 독특한 수수께끼들

말코비치 캐릭터로 미리 살펴보았듯이, '존 말코비치 되기'는 단순한 초현실 코미디 영화가 아니라 인간의 심연에 있는 실존적 존재에 대해 탐구하는 영화이다. 감독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와 각본의 찰리 코프먼(Charlie Kaufman)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정체성, 욕망, 인간 경험의 복잡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코 쉽지 않은 주제를 다루는 만큼 영화는 독특하고 수수께끼같은 요소로 채워져 있다. 영화를 보며 아리송했던 점은 바로 7 1/2층이라는 독특한 설정이었다. 이 반쪽짜리 층은 평범함과 비범함 사이의 은유적인 다리 역할을 하며, 자아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향한 캐릭터의 탐구를 반영하는 중간지대인 것이다. 이러한 공간적 이상은 존재의 미로를 헤쳐 나가고, 관습을 초월하고,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려는 인간 고유의 욕망을 상징한다. 7 1/2층은 또한 정체성의 파편화된 성격을 반영한다. 반층이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듯, 등장인물들은 존 말코비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면서 자아의 파편화와 씨름한다. 이 공간적 은유는 등장인물의 실존적 여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하며 선형적이고 응집력 있는 정체성 개념에 도전하고 자아의 유동성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크레이그의 인형사라는 직업 역시 처음엔 왜 주인공 직업이 인형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인형사는 영화의 서사를 엮는 주요한 요소로, 인형극은 주체성과 자율성을 위한 등장인물의 투쟁의 축소판 역할을 한다. 사회적 기대, 욕망, 외부 영향 등 인형의 끈이 등장인물을 잡아당기는 세상에서 인형극은 자신의 인생의 서사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하려는 개인이 직면하는 실존적 어려움을 구현한다. 영화는 관객에게 개인 선택 의지의 본질, 우리의 운명을 형성하는 외부 힘, 자유 의지와 존재의 끈 사이에 항상 존재하는 긴장에 대해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말코비치로 향하는 포털 역시 영화의 핵심 서사이지만 포털의 의미를 한 번에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말코비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영화의 중심이 되는 상징적 요소로 실존적 호기심, 욕망, 그리고 자신과 타인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대한 통렬한 탐구인 것이다. 영화 속 다양한 캐릭터가 말코비치의 눈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면서 영화는 정체성의 유동성과 혁신적인 자기 발견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이 상징적인 포털은 자아에 대한 선입견에 도전하는 서사적 장치가 되어 관객이 그러한 실존적 여정의 심오한 의미를 파악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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