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극장에서 봤던 영화 중 나의 최고의 영화를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영화를 얘기할 것이다. 바로 <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이다. 영화의 원제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스파이더-버스'이긴 한데 한국에서는 좀 더 단순한 느낌의 제목을 사용했다. 아마 2018년 개봉했던 소니 픽쳐스에서 선보이는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의 첫 번째 영화 이름도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라고 원제와는 다른 이름으로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개봉하자마자 소식을 듣고 영화관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2018년에 보았던 당시의 스파이더맨 시리즈 첫 번째 영화인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너무 재밌게 봤었기 때문이다. 2023년 두 번째로 선보인 이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는 끊임없이 확장되는 영화 속 멀티버스의 개념을 관객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2D와 3D 애니메이션이 한데 섞여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내는 기술은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하면 애니메이션 장르의 혁명으로 등극했다. 이번 글에서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 보여주는 멀티버스의 개념과 애니메이션 기법과 스타일 그리고 영화 속 이스터 에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진정한 멀티버스 세계관을 보여주는 영화
사실 '멀티버스'라는 개념이 이 스파이더맨 영화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많은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멀티버스 개념은 유행처럼 퍼져있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이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새로운 차원으로 제대로 보여준다. 새로운 스파이더맨으로 자리잡은 주인공 마일스 모랄레스가 이 다른 차원을 오가며 다른 세상 속의 스파이더맨을 만나면서 '스파이더 유니버스'에 자신이 얽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각각의 유니크한 세상의 다양한 차원(우주) 속 '스파이더-사람들'이 등장하면서 광대한 멀티버스에 대한 실체를 관객이 인지하게 만든다. 각 차원은 우아한 스파이더걸 그웬부터 누아르풍의 스파이더맨 누아르까지 다양한 스파이더맨들로 이루어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멀티버스 개념의 탁월함은 스파이더 유니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가능성을 내포하면서 그 진가를 더한다. 멀티버스는 단순히 영화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만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마일스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 다중차원에 대해 깊이 알아갈수록 더 큰 메시지를 전달한다. 바로 아무리 수많은 우주 속에서 또 다른 스파이더맨들이 존재하더라도 지금 이 세계에 존재하는 스파이더맨은 마일스 단 한 명뿐이고, 각자의 세계에서는 각자의 스토리를 직접 만들어갈 수 있다는 메시지말이다.
애니메이션 기술의 끝판왕, 비주얼 대축제
다른 관객들은 어떻게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이 <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영화는 시각적으로 엄청난 자극을 주었다. 픽사나 디즈니에서 선보이던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스타일과는 차원이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며 만화책에서 표현하는 역동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렸고 동시에 애니메이션 장르의 경계를 초월했다. 영화의 애니메이션은 특히 2D와 3D 기술이 획기적으로 혼합된 장면들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관객을 사로잡으며 비주얼적으로 마치 대축제를 벌이는 것과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영화 속 캐릭터들 역시 스파이더맨이 도시를 횡단하는 곡예 능력의 운동성을 유연함과 우아한 움직임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를 포함하고 있어 다시금 기술의 진보에 큰 깨달음을 느끼게 한다. 이 애니메이션 영화의 또다른 차별점은 바로 만화책의 독특한 스타일을 반영하고 있다는 지점이다. 의성어나 감탄사 효과를 만화책 스타일의 텍스트를 사용하여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의 층을 다각화하고, 실제 만화책의 장면을 연상시키는 벤데이 점(Ben Day dot) 도색 기법과 화면 속 프레임 분할은 누군가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누군가에겐 시각적 신선함을 제공하며 스파이더맨의 세계를 생생하게 표현한다. <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이 달성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도 오리지널 만화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예술 형식이 되었다.
스파이더맨 속 이스터 에그
나의 경우 <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보기 전에는 스파이더맨이라는 히어로 물에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았지만, 열렬한 스파이더맨 팬들과 만화책 애호가들이 이 영화를 봤다면 영화 전반에 깔려있는 다양한 레퍼런스들과 '이스터 에그'를 보며 더욱 영화를 재미있게 관람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이스터 에그'가 무엇인지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스터 에그란 어떤 장면이나 상황 속에 숨겨진 메시지나 상징, 기능들을 의미한다. 영화는 미묘하게 상징적인 만화책 표지를 장면 속에서 보여주기도 하고, 이전에 이미 만들어진 다양한 스파이더맨 영화 속 주인공들을 이따금씩 등장시키며 스파이더맨 장르에 많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보물찾기 하듯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이 이스터 에그는 단지 스파이더맨의 팬들을 위한 서비스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팬들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쌓여온 스파이더맨이라는 유산에 대한 영화제작자들의 깊은 감사와 존경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마일스가 여러 멀티버스를 넘나들면서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관객들은 다양한 상징을 발견하고 스파이더 유니버스에 더욱 연결된 느낌을 받게 한다. 이렇게 이 영화를 보며 숨은 의미를 찾는 것은 관객이 더 영화를 즐겁게 관람할 수 있게 하고 영화의 디테일한 장면들에 더 몰입하여 볼 수 있게 만들어 마치 관람객들이 영화 내러티브를 함께 창작하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게 한다.
'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가씨> 박찬욱 감독, 숙희와 히데코, 은유와 상징 (0) | 2024.01.07 |
---|---|
<베티 블루 37.2> 줄거리, 사랑과 집착, 프랑스 영화계의 영향 (0) | 2024.01.07 |
<아멜리에> 아멜리, 파리, 풍부한 상징성, 대중문화로의 영향 (0) | 2024.01.07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야자키 감독, 일본 민속 신앙, 정체성 (0) | 2024.01.06 |
<더 폴> 촬영 장소, 영상미, 비하인드 스토리 (0) | 2024.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