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프랑스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점들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영화 깊숙하게 새겨 넣은 감정적 요소들이 묻어 나오는 느낌을 많이 받기 때문인데, 1986년에 개봉한 이 영화 <베티 블루 37.2> 역시 그러한 요소들을 많이 담고 있어서 좋아하는 영화로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이 영화는 지난번에 소개했던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고 영화 첫 장면부터 매우 논란을 불러일으킬만한 요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지닌 깊이와 아름다움은 그런 논란을 잠재우기 충분하다 생각되어 이렇게 소개를 하려 하는 것이다. 장 자크 베넥스(Jean-Jacques Beineix) 감독이 필립 디안(Philippe Djian)의 소설 '37.2 Le Matin(아침 37.2도)'를 각색하여 만든 이 영화는 두 캐릭터 베티와 조그의 격동적인 관계를 통해 사랑의 열망과 절망 그리고 그 심오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의 줄거리에 대해 알아보고, 영화의 핵심 이야기인 사랑과 집착 그리고 이 영화가 프랑스 영화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베티 블루 37.2> 어떤 영화인가 : 영화 줄거리
<베티 블루 37.2>의 이야기는 해안 마을에서 조용한 삶을 살고 있는 만능 재주꾼이자 작가 지망생인 남자주인공 '조그'와 함께 시작된다. 조그는 열정이 넘치고 당돌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폭풍 같은 성격을 갖고 있는 여자주인공 '베티'와 만나고 있다. 베티는 조그의 삶에 활력을 주는 촉매제이자 동시에 혼란과 어려움을 안겨주는 허리케인으로 작용한다. 둘의 성격은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두 주인공은 강렬한 그들만의 로맨스를 이어간다. 너무나 사랑스럽다가도 갑작스러운 분노로 폭주하는 베티의 행동은 그들의 관계에 예측할 수 없는 요소를 더하고, 이야기가 점차 전개됨에 따라 초기의 열정이 점점 불안의 그림자로 드리워지는 광경을 볼 수 있게 된다. 베티의 정신 건강이 점점 약해지면서 평화롭고 목가적인 사랑이야기는 더욱 어둡게 변한다. 한때 열렬한 사랑의 표현으로 여기던 그녀의 감정은 두 사람의 관계를 위협하는 조울증과 집착으로 변한다. 광기에 빠진 베티의 이야기는 영화 서사의 중심이 되며 사랑을 위한 조그의 이해심과 도전이 관객의 사회적 편견을 점차 제거시킨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베티의 정신 상태가 악화 되면서 비극이 전개되고, 활기차던 사랑 이야기는 가슴 아픈 이야기로 변모한다. 사랑하는 여자의 철저한 무너짐을 직면한 조그는 집착이라는 것이 얼마나 파괴적인 힘을 갖고 있는지 목격하게 된다. 영화의 결말은 가슴 아프면서도 서정적이어서 관객들에게 큰 여운을 준다.
베티와 조그가 보여주는 사랑과 집착
<베티 블루 37.2>에서 보여주는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람을 소모시키고 또 변화시키는 힘이다. 거칠고 예측할 수 없는 성격의 베티는 그녀가 갖고 있는 무한한 사랑의 에너지를 가장 자유로운 형태로 표현한다. 조그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유쾌하면서도 극단적이다. 베티는 사랑하는 연인들은 모든 것을 공유하고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한 베티의 에너지에 매료된 조그는 그녀라는 태풍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사랑에 대한 조그의 생각은 베티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조그는 사랑이란 감정은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이 아니라 꾸준하게 열기를 내뿜는 불꽃이라는 관점을 갖고 있다. 베티의 과도한 열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집착으로 변한다. 집착은 점점 더 어두운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영화에서는 이 집착이라는 강박이 이성을 흐리게 해 합리적 판단을 못하게 하고 그 결과 개인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것으로 묘사하면서 집착이라는 심리의 복잡성을 파헤친다. 점점 정신 건강이 악화되어 처참하게 무너지는 베티를 지켜보는 조그를 보며 관객들 역시 사랑의 열정과 집착이라는 경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갖게 된다. <베티 블루 37.2>를 단순한 러브 스토리 영화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강렬한 감정 속 인간의 복잡한 마음을 탐구하는 영화이다.
프랑스 영화계에 미친 <베티 블루 37.2>의 영향
<베티 블루 37.2>는 시대를 초월하며 프랑스 영화의 역사에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특히 <베티 블루 37.2>는 '시네마 뒤 룩(Cinéma du Look)으로 알려진 프랑스 영화 운동 속에서 탄생했는데, 이 운동은 시각적 스타일이나 생동감 넘치는 비주얼 미학에 중점을 두고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에서 벗어난 것이 특징이다. 장 자크 베넥스 감독은 이 운동의 핵심 인물로 감독만의 독특한 관점을 <베티 블루 37.2>에 가져오면서 프랑스 영화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는 화려하고 매끄러운 시각적 스타일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의 강렬함을 표현했고, 장 자크 감독의 영화 촬영법은 그 자체로 새로운 언어가 되어 베티와 조그의 격동적인 관계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영화의 내러티브 역시 전통적인 로맨스 서사에서 벗어나 집착과 억제되지 않은 열정의 결과 등 정신 건강에 대한 탐구로도 확장되었는데, 이를 통해 정서적 복잡성을 탐구하는 영화의 바탕이 되며 프랑스 영화가 정신에 대한 탐구를 더 깊게 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시네마 뒤 룩의 대표적 영화인 <베티 블루 37.2>는 큰 성공을 거두며 이후의 프랑스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으면서 전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영화의 성공은 영화의 주제가 그만큼 보편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였고, 사랑에 대한 새로운 관점은 다음 세대의 영화 제작자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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