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월스트리트와 맨해튼의 우뚝 솟은 고층 빌딩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아메리칸 사이코>는 고립과 소외 그리고 물질주의와 소비주의에 대한 인간의 탐욕스러운 욕망을 내포하고 있는 영화다. 감독 메리 해런(Mary Harron)이 브랫 이스턴 엘리스(Bret Easton Ellis)의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각색한 이 영화는 성공했지만 심각한 불안 증상을 겪고 있는 투자 은행가 패트릭 베이트먼(Patrick Bateman)의 정신을 탐구한다. 이번 글에서는 <아메리칸 사이코>가 조명하는 대중문화의 어두운 면과 고립, 소비주의, 물질의 과잉에 젖은 극단적 사회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도시 정글 속 현대인들의 고립
<아메리칸 사이코>는 정글처럼 빌딩 숲으로 우거진 뉴욕 맨해튼의 스카이라인, 그 속에서의 만연하게 발생하는 고립을 탐구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가 단연 돋보였던, 이 영화의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먼은 도시의 전문가로 성공적이고 매력적이지만 철저하게 고립된 개인이자 대도시의 표면 아래에 곪아터져 있는 단절을 상징한다. 차갑게 빛나는 금융 빌딩 속에서, 베이트먼은 호화로운 아파트의 공허함에서 울려 퍼지는 뿌리 깊은 소외감을 감추려고 하지만 그는 차갑고 무관심한 도시 속에서 점점 광기에 빠진다. 이렇게 꿈과 기회의 상징인 도시는 곧 고립의 시초가 되고 만다. 영화는 베이트먼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단순한 메아리같이 또는 분주한 배경 속에서 상반되는 불협화음으로 묘사하는데, 그가 고급 시설이나 대중문화 그리고 명함의 디자인에 집착하는 만큼 그의 외로움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호화로운 파티와 값비싼 점심까지, 도시 정글은 많은 사람들과 화려함으로 북적이지만 동시에 단절의 온상이며, 아이러니하게도 성공과 고립이 기이하게 공존한다. <아메리칸 사이코>는 인간관계를 제외한 야망과 성공의 모든 것을 약속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진정한 대가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물질주의와 소비주의에 대한 고찰
<아메리칸 사이코>는 1980년대를 장악한 지나친 물질주의와 소비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끊임없는 부의 추구와 그 욕망이 수반하는 공허함을 포착한다. 베이트먼이 아침부터 경건하고 세심하게 치르는 출근 의식, 패션 브랜드에 대한 집착, 명함 디자인에 대한 강박적 평가는 단순한 기이함이나 개인적 특이사항이 아니라 과시적 소비에 도취된 일종의 사회적 증상인 것이다. 영화는 화려하고 풍요로운 겉모습을 해체하고 그 이면에 있는 공허함을 '사이코패스 살인마'라는 극단적 상황을 통해 드러낸다. 베이트먼의 외면에 대한 집착과 물질적 부의 과시가 높아질수록 그 내면에 숨겨진 공허는 더욱더 깊어지고 살인의 빈도도 더욱 높아진다. 의미 없이 주고받는 공허한 대화, 피상적인 관계의 상호작용, 그리고 더 많은 것을 향한 끊임없는 욕망은 물질적 소유를 위해 진정한 인간관계를 희생하는 사회의 모습을 대변하고 영화는 이에 날카로운 비판을 던진다. <아메리칸 사이코>는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진정한 관계보다 소유의 가치를 중시하는 물질주의와 소비주의 같은 사회적 문화에 반기를 들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사회적 가면과 인간성의 소외
<아메리칸 사이코>는 사교 모임과 세련된 상호작용이라는 허울 아래 겉모습에 의해 주도되는 세상에 대한 환상을 깨부순다. 베이트먼과 그가 어울리는 사회적 교류 집단은 마치 가면 무도회에서 본인의 정체를 숨기고 춤을 추는것과 같이, 진정한 자아를 숨기기고 보호하기 위해 또다른 완벽한 모습의 페르소나를 만들어 교류한다. 영화는 이처럼 도시에서 경험하는 소외는 단지 물리적으로 혼자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연결, 인간적 차원의 관계로 거듭날 수 없는 심리적 차원의 고립과 소외를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중간중간에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베이트먼의 완벽히 흠잡을 데 없는 외모와 동시에 폭력적이고 잔인한 격정의 폭발은 사회적 기대와 개인적 현실 사이의 부조화를 나타내기도 한다. <아메리칸 사이코>는 이처럼 인간성 상실의 소외가 얼마나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를 암시하고, 과연 사회적으로 물질로 가득찬 가면을 쓰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질문한다. 또한 동시에 그것들이 개개인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피해와 진정한 자아의 붕괴를 야기하는 소외를 탐구한다. 가식이라는 악순환에 갇혀버린 인물들은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성과 인간성을 희생하는 것에 동의어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인간 관계의 나약함을 보게 되고, 영화는 사회적 규범에 순응할수록 인간성과의 접촉을 잃을 위험이 더 커진다는 소름 끼치는 깨달음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아메리칸 사이코>는 스릴러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회 구조에 내재된 고립, 소외, 소비주의, 물질주의에 대한 끝없는 갈망에 맞서고 현대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는 상징적인 영화로 남아있다. 영화는 우리가 형성하는 관계의 진정한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 물질만능주의에 취한 문화로 인해 지불해야하는 대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동시에 <아메리칸 사이코>는 사회적 성공을 추구하다가 끝끝내 자신을 잃어버리는 위험에 대한 경고이자 개인의 고립의 위험성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영화는 우리 자신의 욕망 속에 숨어 있는 그림자와 맞서고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행동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뇌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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