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푸싱 데이지라는 미드를 보며 리 페이스에 푹 빠졌던 시절이 있었다. 그를 더욱 자주 볼 수 있었으면 하던 찰나에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었다. 리 페이스가 출연했다 해서 관심이 가긴 했지만 영화의 예고편을 보며 영상미가 범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질 정도로 매혹적인 영상미를 자랑하고 있었다. 비평가들 역시 타셈 싱(Tarsem Singh) 감독의 <더 폴>이 그림 같은 장소들과 감각적인 시각적 요소들을 엮어 영화의 몰입도를 높였다 평가한다. 이번 글에서는 <더 폴> 영화의 제2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촬영 장소들에 대해 알아보고, 영화의 어떤 요소들이 영상미를 더욱 극대화하는지 그리고 영화와 관련된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는 무엇이 있는지 파악해 본다.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 촬영 장소
영화 <더 폴>은 다양하고 매혹적인 장소들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각 장소는 캔버스 역할을 하며 독특한 방식으로 영화의 몰입도 높은 스토리텔링에 기여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로이(리 페이스)와 알렉산드리아가 처음 만났던 황폐한 로스앤젤레스의 병원에서부터 광활한 사막까지, 장소는 단순한 배경 그 이상의 역할이자 그 자체로 영화의 또 다른 캐릭터가 된다. 그중 병원은 로이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이야기의 시작점을 의미하는 공간이 되는데, 병원의 무미건조한 복도의 모습은 로이의 이야기 속에서 만들어진 생동감 넘치고 아름다운 세계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이런 설정은 영화에 내러티브적 이분법을 강화하여 관객이 허구와 현실 사이의 경계에 의문을 품도록 유도한다. 로이가 알렉산드리아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 등장하는 각 장소들은 이야기 속 등장인물의 감정과 이야기의 기본 주제를 나타내는 상징이 된다. <더 폴>의 촬영 로케이션은 인도, 남아프리카,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터키, 피지, 체코, 영국, 볼리비아, 캄보디아 등등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한 국가의 아름다은 모습들을 담아냈다. 영화는 이를 통해 관객에게 시각적 오디세이를 경험하게 하며 현실과 상상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비주얼 요소들의 교향곡, 탁월한 영상미의 <더 폴>
타셈 싱 감독의 <더 폴>은 비주얼 측면에서 꼽자면 가히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그 영상미가 뛰어나다. 영화에서 비춰지는 촬영 기법과 세심한 연출, 생동감 넘치는 컬러의 사용, 상징적인 의상 디자인까지 무엇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영화는 선택한 장소를 더욱 잘 보여주고 그 장소의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넓은 와이드 샷과 파노라마를 사용하면서 각 이야기의 복잡한 세부 사항에서부터 다양한 배경의 본질과 웅장함을 잘 담아내었다. 이와 더불어 장엄한 풍경을 보여주는 공중 촬영부터 인물의 얼굴에 새겨진 감정을 포착하는 클로즈업까지, 타셈 감독의 카메라는 그 자체로 이야기꾼 역할을 한다. 영화의 색상 사용은 영화에 시적 감성을 부여하며 상징적 요소로도 활용되는데, 병원 장면의 세피아톤은 현실감을 상징하는 반면 이야기 속 시퀀스들의 생동감 있고 초현실적인 색상들은 우리를 환상의 세계로 빠지게 만든다. <더 폴>의 의상 역시 눈길을 사로잡는데, 의상 디자이너 에이코 이시오카(Eiko Ishioka)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영화의 의상들은 각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심리 상태를 반영하고 강렬한 색감과 디자인으로 이야기의 설득력을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님은 이 영화를 보고 '캔버스를 욕망하는 스크린, 붓을 동경하는 카메라'라는 코멘트를 남겼는데, 영화가 보여주는 시각적 예술의 탁월함을 표현해 주는 문장인 것 같다.
영화의 재미를 더하는 비하인드 스토리
어떤 작품을 보던간에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관련 에피소드를 들으면 더욱 작품에 대한 애정이 생기고 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더 폴>의 스토리텔링과 영상미의 매력만큼 이 영화와 관련된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도 많이 있다. 우리는 영화 내에 수많은 장소들이 등장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영화를 찍기 위해 방문한 국가가 무려 28개나 된다고 한다. 많은 나라들을 로케이션 하여 촬영한 만큼 영화 촬영 기간도 상당했는데,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총 4년에 걸쳐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컴퓨터 그래픽이 거의 사용되지 않은 영화이기도 한데, 특히 말, 원숭이, 타조, 코끼리, 낙타 등 등장하는 모든 동물들 역시 실제 동물들을 촬영한 것이라고 한다. 영화를 보며 너무나 귀여운 소녀 '알렉산드리아'역을 맡은 카틴카 운타루(Catinca Untaru)가 인상에 남았었는데, 카틴카가 등장하는 몇몇 장면에서는 카틴카가 촬영 중인 사실도 모르고 실제로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영화에 그대로 담아내기도 했다고 한다. 배우 리 페이스도 영화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영화 속 역할을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체력을 단련하여 몸을 만들고 모든 액션신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해 냈다고 한다. 타셈 싱 감독은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더 폴>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했는데, 대표적 작가들을 꼽자면 네덜란드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와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Odilon Redon)이 있다.
<더 폴>을 보면 아름다운 영화 속 풍경에 흠뻑 빠지고 당장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만큼 뛰어나게 표현한 영화의 영상미는 세밀한 연출과 색상의 사용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여러 시각적 요소는 조화를 이루며 영화 속 등장인물과 서사를 더욱 도드라지게 해주었다. 영화와 관련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더욱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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