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에서 다뤘던 <라라랜드>도 좋은 뮤지컬 영화이지만, 나에게 최고의 뮤지컬 영화를 꼽으라 한다면 주저 없이 이 영화 <시카고>를 택할 것이다. 음악과 연출 그리고 스토리까지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조화를 이루며, 매력적인 배우들까지 합세하여 영화의 관능미와 섹시함을 넘치게 했다. 2002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1920년대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화려한 무대 위의 스타를 꿈꾸는 록시(르네 젤위거)와 시카고 최고의 디바인 벨마(캐서린 제타-존스) 그리고 승률 100%의 유능한 변호사 빌리(리처드 기어)가 교도소에서 만나 무죄 판결을 위한 계획을 도모하는 이야기이다. 1920년대 미국, 특히 시카고의 분위기는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서 내가 봐도 매우 매력적이고 흥미로운데, 이런 시대적 분위기는 미국인들에게도 많이 흥미로운 것 같다. 다른 미국 영화나 소설, 드라마 또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거나 그 시대풍의 의상을 입고 파티를 하는 장면들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시카고>가 또 좋았던 이유는 화려하고 관능미 넘치는 시각적 자극 이면에 신랄하게 사회를 풍자하고 강렬한 여성 캐릭터들을 활용하여 여성의 강인함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시카고>의 배경이 된 1920년대의 풍경에 대해 알아보고, 영화 속에서 나타난 사회 비판과 여성의 권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영화 <시카고>의 시대적 배경: 광란의 1920년대 미국
1920년대 미국은 전례 없는 사회적 변화, 문화적 격변, 예술적 활력이 넘치는 시기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와 새로운 현대 사회의 도래로 라이프스타일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명 재즈의 시대라 불리는 이 시기에는 사회적 제약을 거부하고 대담하고 독립적이며 자유분방하고도 반항적인 정신으로 대표되는 '플래퍼(Flapper)' 문화가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다. <시카고>는 영화 속 캐릭터 록시(르네 젤위거)와 벨마(캐서린 제타 존스)를 이런 플래퍼의 구현으로 묘사하면서 시대 정신을 훌륭하게 포착한다. 짧은 단발머리, 드롭 웨이스트 드레스, 깃털 머리 장식 등 당시의 패션은 영화의 의상 디자인에 녹아들어 관객들에게 시각적 향연을 선사한다. 록시와 벨마 캐릭터의 의상은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당시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반영하는 시각적 표현인 것이다. 경제적 변영과 새로운 해방과 자유로 인해 촉발된 1920년대의 사회 변화는 영화 <시카고>에서 유명인이 되고자 하는 록시의 열망과 자신의 유명한 지위를 유지하려는 벨마의 노력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그녀들의 투쟁은 개인적 이익을 위해 진실을 조작하고, 악명이라 할지라도 유명함을 얻어내려고 하는 당시의 사회적 집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1920년대의 격변이 화려함을 넘어 다른 차원의 문화적 변화와 사회적 역동성을 가져왔기에 가능한 묘사였다. 1920년대 재즈 시대의 많은 사람들처럼 록시와 벨마도 개인 표현에 대한 욕망과 전통적 규범의 사회적 기대 사이의 긴장감 속에서 충돌하며 씨름한다. 영화는 과잉의 매력, 아메리칸 드림 추구, 변화의 위기에 처한 사회의 어두운 기류 등 이 시대의 복잡성을 포착한다. 록시와 벨마의 시련과 승리를 따라가면서 우리는 1920년대를 형성한 사회적 흐름에서 개인들의 충돌을 목격한다.
<시카고>의 화려함 속 날카로운 사회 비판
현란함과 화려함이 가득한 영화 <시카고>에는 날카로운 사회 비판이 함께 녹아들어 있다. 영화 속 사회 풍자의 중심에는 1920년대에 만연한 미디어 조작과 언론의 선정주의를 풍자하는 상징적인 노래 'Razzle Dazzle'이 있다. 능글맞고 말 잘하는 변호사 캐릭터 빌리는 선정주의의 구체화가 되어 법정을 무대로, 재판을 공연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들에게 옛날의 현란한 눈부심을 줘, 눈부시게 하라'라는 가사의 노래는 실체보다 볼거리를 선호하는 사회적 경향과 시대적 집착을 반영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기보다는 즐거움을 더 추구하는 사회를 비판한다. 진실 조작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오늘날 현대 미디어 전반에 울려 퍼지며 관객에게 그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흥겨운 재즈 음악이 넘치는 <시카고>는 유명인 문화 역시 꼬집는다. 영화는 록시와 벨마를 변덕스러운 명성의 상징으로 그리며 부침개 뒤집듯 뒤바뀌는 여론과 일시적일 수밖에 없는 명성의 특성을 강조한다. 록시가 'Roxie'라는 곡에서 '난 연예인이 될 거야. 그건 모두가 아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야. 사람들이 내 눈, 머리, 이빨, 가슴, 코를 알아볼 거야'라는 노래를 부른 것처럼, 영화는 유명인에 대한 공허한 추구와 숭배의 피상성을 드러낸다. <시카고>에서 두드러지는 사회적 비판에는 법률 시스템의 부패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영화 속 등장인물은 법적 절차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작하며 법률 시스템의 결함과 도덕적 부패를 폭로한다. 영화에서 만들어진 용어인 'Chicago Way'처럼 <시카고>의 등장인물들은 규칙을 어기고, 이야기를 만들고, 개인적 이익을 위해 법적 무대를 이용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정의에 대한 추구가 부패로 인해 오염될 수 있다는 불편한 현실에 직면하게 만든다.
격변의 1920년대, <시카고> 속 여성의 권리와 시대적 어려움
록시와 벨마라는 매력적인 캐릭터 때문인지는 몰라도 <시카고>에서의 여성 캐릭터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사실 이렇게 여성 캐릭터가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데에는 영화가 1920년대 여성의 삶과 권리를 다루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1920년대는 여성들에게 분수령 같은 시기였고, <시카고>는 록시와 벨마라는 캐릭터를 통해 그 정신을 훌륭하게 담아낸다. 전통적인 성 역할을 거부하는 플래퍼 문화는 해방의 상징으로 등장했고, 겸손함을 거부하는 플래퍼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자율성, 독립성, 명예를 추구하는 영화 속 여성의 모습은 사회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했던 여성들의 모습을 반영하며, 오랫동안 여성을 제한된 역할에 가둬두었던 사회적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내민다. <시카고>에 묘사된 플래퍼의 반항적 정신은 여성이 새로운 미지의 영역에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게 한 더 넓은 문화 혁명에 대한 은유가 된다. 한편 1920년대는 여성에게 자기표현과 독립과 관련된 많은 기회를 제공하긴 했지만, 그만큼 어려움도 동시에 있었다. 여성에게 자율성과 독립성을 부여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여전히 그들을 가두려는 사회적 기대가 동시에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노래 'Cell Block Tango'는 1920년대 여성의 주체성과 권한 부여를 둘러싼 복잡한 상황을 묘사하며, 주체적 개인과 사회적 통제 사이에서 직면한 여성들의 어려움을 그리고 있다. 법정을 무대로 하는 <시카고>는 여성이 더 이상 수동적인 관찰자가 아닌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법률 시스템을 마주하는 풍경을 소개한다. 또한 영화는 언론과 법조계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비판한다. 록시가 자신의 이미지를 조작하고 법정 절차를 진행했던 것은 남성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 여성이 어쩔 수 없이 취해야 했던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영화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여성이 직면한 여러 어려움을 조명한다.
'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타카> 소설『멋진 신세계』와 비교, 인간의 잠재력, 장면과 인물의 상징 (0) | 2024.01.21 |
---|---|
<로마의 휴일> 오드리 헵번, 로마,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명작 (0) | 2024.01.20 |
<베스트 오퍼> 쥬세페 감독, 심리 서스펜스, 예술품과 골동품의 역할 (0) | 2024.01.18 |
<택시 드라이버> 1970년대 뉴욕, 트래비스와 드니로, 상징적 장면과 명대사 (0) | 2024.01.17 |
<인 타임> 시간이 화폐가 된 사회, 부의 불평등, 디스토피아 (0) | 2024.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