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미스터리, 스릴러, 범죄 장르를 좋아했다. 중학생 때 패트릭 쥐스킨트 작가의 '향수'라는 소설을 읽고 이색적인 소재와 놀라우면서도 동화 같은 상상력에 매료되었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소설 '향수'를 추천해 주고 다니던 어느 날, 원작 소설이 영화로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쁘면서도 걱정이 됐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 영화로도 나왔다는 것이 반갑기도 했지만, 그동안 소설을 각색하여 영화화한 것들이 많았음에도 문학적 깊이와 상상력을 잘 구현해 낸 영화를 만나지 못했었기에 걱정이 됐었던 것이다. 잠시 고민을 했지만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 결국 영화를 보았고, 영화는 그 어떤 작품보다도 소설을 시각적으로 잘 실현해 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뛰어났다. 시대적 묘사나 상황에 대한 묘사, 캐스팅된 배우들 모두 하나같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상상 속에만 있던 소설 내용을 시각적으로 풀어냈다. 아직 소설과 영화를 모두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소설을 읽은 후 영화도 함께 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이번 글에서는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는 것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향수>에서 드러나는 집착과 고립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한 윤리적 딜레마는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향수>로 보는 소설의 영화화, 각색과 그 어려움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는 것은 마치 연금술처럼 어렵고, 원본 작품과 영화 매체에 대한 예리하고도 깊은 이해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누군가는 같은 예술 분야라 각색이 어렵지 않다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 분야의 걸작을 다른 분야로 탈바꿈한다는 것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패트릭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경우는 더욱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은 내러티브가 매우 복잡하고 내면의 독백과 상황에 대한 상세한 묘사, 그리고 주인공인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의 정신이 복잡하게 작용하는 과정들이 풍부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출판사마다 다르겠지만 약 4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 소설을 2시간 분량의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미로 같은 서사를 매력적인 스토리라인으로 압축하면서도 소설의 분위기와 핵심 그리고 본질을 정확하게 추출해야만 했다. 원본 작품을 지키면서도 영화의 시간 제약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소설 '향수'가 더욱 영화로의 각색이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후각인 '향기'를 시각으로 변환하는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소설의 서술적 장치이자 핵심 요소인 향기를 시각적으로 만들면서도 관객에게 감정적, 심리적 영향을 미쳐야 했다. 감독 톰 티크베어(Tom Tykwer)는 창의적인 연출로 시각적 단서, 조명, 연상 이미지 등을 사용하여 소설 속 향기의 세계를 전달하는 것에 성공했다. 소설의 주인공 그르누이의 내면을 표현하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소설은 그르누이의 생각, 두려움, 집착 등을 세밀하게 표현하며 독자에게 그 내부 세계를 생생하게 전달했는데, 이런 내면에서의 생각과 독백을 외부적인 행동과 표현으로 바꾸는 것이 커다란 과제였다. 감독은 그르누이의 성격과 디테일한 몸짓과 표정으로 응축시켜 시각적으로 표현하였고, 소설 속 그르누이의 내면의 깊이를 다 담아낼 수는 없었지만 그르누이라는 인물의 본질을 포착하여 관객에게 전해주었다.
<향수>에서 말하는 집착과 고립의 사회적 의미
영화 <향수>의 핵심에는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Jean-Baptiste Grenouille)라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의 캐릭터가 있다. 영화는 그르누이를 통해 집착과 고립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에서 완벽한 향기를 향한 그르누이의 끊임없는 열망은 순응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단일한 목적을 추구할 때 나타날 수 있는 고립에 대한 은유가 된다. 그르누이의 집착은 결국 그를 사회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인간성으로부터도 고립시킨다. <향수>는 관객들에게 개인의 야망과 공동체의 유대감 사이의 미묘한 균형에 대해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그르누이의 고립은 개성과 사회적 관계를 모두 중시하는 사회에서 끊임없는 열망의 추구가 불러올 수 있는 대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고, 무언가에 대한 집요한 집착이 고독과 고립에 놓여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상상하게 한다. 영화는 그르누이의 고립과 동시에 피상적 아름다움에 대한 사회의 집착도 강조한다. 사실 그르누이의 완벽한 향기에 대한 집착은 18세기 프랑스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서 개인의 향기와 후각적 경험에 엄청난 가치를 두는 사회적 규범을 반영하고 있다. 향기가 개인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관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상에서 그르누이는 '향기'라는 후각 경험에 내재된 힘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향기라는 휘발적이고 감각적인 것을 소유하고자 했던 그르누이의 집착은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보이는 끊임없는 욕망의 추구와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개인의 잘못된 욕망은 과도한 집착을 불러오고 고립이라는 악순환과 맞물리면서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향수>에서 나타난 윤리적 딜레마
영화 <향수>의 주인공 그르누이의 완벽한 향기를 향한 끊임없는 집착은 '윤리적 딜레마'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후각적 완벽함을 열망하는 과정에서 그르누이는 타인에게서 나는 매력적인 향을 추출하기 위해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예술적 야망과 완벽함의 추구가 극악무도한 행위를 정당화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관객들이 직면하게 만든다. 윤리적 딜레마는 그르누이의 예술적 집착과 사회가 신성하게 여기는 도덕성의 경계 사이에 있다. 영화는 예술적 표현의 한계와 창의적인 천재성을 추구하는 데 허용되는 희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하고, 관객은 그르누이가 완벽한 향기를 만들어 냈으면 하는 바람과 동시에 그의 범법행위에 대한 거부감을 통해 스스로의 도덕적 신념과 씨름하게 된다. 영화 <향수>는 사회적 규범과 기대가 개인의 선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개인의 책임과 집단적 책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는 점 역시 시사하고 있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관객은 그르누이가 점차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을 목격하지만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적 환경 역시 보게 된다. 사회는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비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비난하면서도 찬양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과연 그르누이는 사회적 환경의 산물인지, 아니면 온전히 개인의 잘못된 망상의 결과인지 질문하게 하면서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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